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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반사(Daily Routine)

[차이나 다이어리 71] 연태, 추억이 방울방울

누군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 후 무지개가 피어오르듯, 어느 새 또 봄이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거리를 지날 때마다 새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새로 맞이하는 봄을 맞는 장소는 다름 아닌 또, 연태이다. 그러니까 벌써 연태에서의 삶도 세 번째 해를 맞이하였다. 처음 중국을 오기 전에는 기대도, 설렘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난 속으로 몇 번이나 생각했다. 내가 중국을 선택한 이유가, 특히 연태에 온 이유가 헛되지 않았음을 말이다. 사람이 아닌 무언가에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아마 난 지금 연태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중국에 온 2014년 첫해의 며칠은 좋은 추억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3월이 되어도 채 지나가지 않은 추위와 너무나도 짜고 기름진 음식 그리고 중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해서 생겨날 수 있는 오해와 낯설음으로 난 움츠리기만 하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왜 중국에, 그리고 연태에 왔는지를 생각하였다. ‘세계를 품고 나를 더 성장시키자는란 목적은 처음 중국에서 느꼈던 어려움을 이겨낼 만큼의 큰 포부였기에 움추린 맘을 뒤로하고 더 멀리 도전하려는 마음으로 바꾸려고 했다. 그래서 처음 생각한 것이 '중국 알아가기'였다. 중국에 오기 전 관련서적을 읽거나 지인들로부터의 이야기를 들은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중국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아가기로 하였다. 우선 중국인 100명 사귀기‘30개 도시 여행하기프로젝트를 계획하였다. 처음에는 내가 생각해도 다소 허황되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를 달성해 나간다는 의미에서 묘한 즐거움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과자 하나를 사더라도 되도록이면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들러 자주 사장님을 만나 이야기하려고 노력하였고, 어디서든 중국인 친구들을 만나면 연락처를 주고받아 꾸준히 친해지려고 하였다. 더불어 1주일에 2번 이상은 중국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였고, 가까운 연태대학교를 방문하여 배운 표현을 현지 대학생들에게 활용해 보기도 하였다. 교사라는 신분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연태(연대) 한국학교에 왔기 때문에 주중에는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주말이나 공휴일이 되면 여기저기 중국을 돌아다니며 현지인들의 숨결을 느껴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노력하니 언어는 물론 '아 중국은 이런 곳이구나!'라는 것을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느 새 나 스스로도 중국에 흠뻑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연태는 내게 더 그러한 마음을 전해 준 것 같다.

 

 

 

 

내가 중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중국친구들 때문이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하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였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느끼기에 그들은 전에 가졌던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깨줄 만큼의 호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안마를 받으면서 친해진 전문 안마사 닥터리(그의 애칭)는 내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작은 것이라고 도움을 주었다. 태극권을 전수해준 맹순은 자신의 첫 월급을 쪼개 맛있는 음식으로 보답하려 했으며, 꼬치가게를 하는 친구들은 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버선발로 나와서 나를 맞아 주었고 심지어 음식 값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들뿐만 아니라 더욱 고마웠던 사람들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주사님, 조리사님, 운전기사님, 청소하시는 분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게 나를 대해 주었으며 내가 어리숙한 중국말로 인사를 하면 밝게 웃으면서 대답해 주셨고 어떤 때는 이것저것 물으시며 관심을 가져 주셨다. 그들에게 나는 어쩌면 한국에서 온 외국인이라는 특별함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생각하더라도 너무나도 고맙게도 '관심'을 나타내 주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난 그들이 내게 특별한 사람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것 역시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배려하는 '관심'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때마다 진심이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2년이 지난 시간 속에서 나의 중국인 친구는 거의 70명에 육박하고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 달성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부른 때가 찾아온 것이다.

 

두번째로 중국은 내게 여행지로 감동을 주었다. 내가 만난 중국 여행지는 감동 그 자체였다. 두려움과 걱정을 높은 산의 기상으로 떨쳐버리게 했던 태산여행을 시작으로, 갈 때마다 새로움을 전해주었던 웨이하이와 칭다오, 교장선생님과 함께 해서 더 즐거웠던 웨이팡, 그리고 쯔보와 칭저우, 지난등은 한국인이 잘 모르는 산동성을 여행지로서 다시 돌아보게끔 만드는 매력을 주었다.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는 상하이와 베이징은 갈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대도시의 기운을 내뿜었고, 바다 건너 대련과 단동, 선양여행에서도 연태에서 맛볼 수 없었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기억 남는 여행지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골마을이라는 '우위엔(무원)'과 배낭여행의 천국인 '윈난성' 그리고 '실크로드'여행이었다. 우위엔은 아무도 가보지 않았을 것 같은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윈난성과 실크로드는 생애에서 반드시 가봐야 하는 이유가 수십 가지는 되었다. 중국여행을 할 때마다 느꼈던 건, 마치 중국이 하나의 세계와도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세계여행을 하지 않고 중국여행만 하여도 마치 전 세계를 다 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추운 곳과 더운 곳, 수백 가지의 음식과 50여개가 넘은 민족과의 만남은 다시 봐도 감동, 감동이었다.

 

마지막 내가 중국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내가 있는 이곳 연태 때문이다. 연태는 중국에 오기 바로 직전에야 알았던 곳이었다. 생판 무지의 땅에 와서 내가 연태를 좋아하게 된 것은 연태가 주는 자연적, 인간적으로의 마력 때문일 것이다. 연태는 바다와 산이 지척에 있기 때문에 무리해서 멀리가지 않아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연태산 공원에서 바라보는 연태해수욕장과 17번 관광버스를 타고 둘러보는 연태해안가는 그 중에서도 백미이다. 그리고 쿤위산은 사계절 몇 번이나 가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산새가 좋다. 제주도를 옮겨 놓은 듯한 양마도와 불교의 기운이 느껴지는 유적지 펑라이는 한국에서 온 지인들에게 소개시켜주면 좋을 명소이다. 이곳을 다 방문했다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한 사람이고, 그에 더해 여기에 살고 있으니 너무나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연태에서의 26개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얼마나 이곳에 더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동안은 지금보다 더 푹 빠져서 중국을 연태를 끌어안아보고 싶다.